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에는 전국적으로 디자인 붐이 일기 시작했다. 서울시를 비롯해 지자체들이 앞다퉈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를 계획하고 진행하면서 경쟁적으로 도시디자인이니 공공디자인이라는 빛 좋은 공약을 선심 쓰듯 뿌려댔다. 결국 의미도 모르고 개성도 상실한 모방에 그치면서 부작용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뒤늦게나마 각 도시마다 전문가를 두고 우리에게 어울리는 도시디자인, 공공디자인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파리나 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도시가 도시디자인, 공공디자인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그것이 뜻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해야 개성 있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공공디자인(public design)은 커머셜 디자인(commercial design)을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이해하기 쉽게 사용하면서 자리 잡은 합성어다. 즉, 공적 공간을 국민의 세금으로 계획하고 설치하여 유지할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책임도 강조하는 의미도 포함된 것이다.

공적 공간이란, 국민 모두가 직접 사용하는 공간, 시설, 용품, 정보를 의미한다. 박물관이나 광장부터 구멍가게의 간판, 주거지역의 작은 벤치나 자전거 거치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이러한 도시공간에서 공공디자인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되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야 한다. 더 나아가 공공디자인은 한 지역의 문화 아이덴티티를 대변하는 것으로서, 21세기의 도시에서는 아이덴티티, 휴먼스케일, 커뮤니케이션이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디자인은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의 브랜드 이미지를 향상시키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자신을 정확히 파악하고 개성을 드러내는 일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치장에만 급급한 한국의 도시들이 지역민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풍토와 어울리는 디자인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기존의 공공디자인 관련 서적이 이론 중심이었다면, 이 책은 공공디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쉽고 명쾌하게 제시하였다. 이미 도시디자인으로 유명한 파리와 로마의 광장이나 박물관에서 그들에겐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공공에 대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고전적인 형태를 그대로 살린 로마 시내의 공사 가림막이나 재치 넘치는 공공화장실은 우리네 공사 가림막이나 공공시설이 얼마나 성의 없는 눈가림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천 년을 넘긴 성벽에 붙어 있는 공중전화 부스, 르네상스 양식의 가로등, 고르지 않은 전돌바닥은 세월을 거스르지 않고 옛것과 교묘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은 고흐를 기려 해바라기를 실내디자인의 콘셉트로, 위스콘신 주의 매디슨 공항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즐겨 사용했던 나뭇잎 모양의 패턴을 공항의 실내장식에 적용하여 그 지역 예술가를 통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있다.

유럽뿐만 아니라 홍콩, 베이징, 오사카 등 우리와 정서가 비슷한 아시아 도시들의 광장이나 길거리에 설치된 스트리트 퍼니처, 공항이나 전철역의 유도사인이나 게시물, 개성을 찾아내어 다시 살린 도시의 실례는 우리의 도시디자인, 공공디자인이 가야할 방향을 진솔하게 제시하였다.